“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좋은 이웃은 복이 있어야 만난다.” 이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천만매린(千萬買隣)은 여기서 조금 더 과감한 주장을 합니다. “복이 없어도 천만금을 들여서라도 좋은 이웃을 사라!”는 거죠.
요즘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기에 사람 관계도 어려운 시대에 “이웃까지 돈 주고 사야 한다고?”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고사성어는 집값보다 더 귀한 ‘이웃’의 가치를 알려줍니다.
천만매린의 유래 – 집보다 비싼 이웃, 왜?
이 사자성어는 중국 남조(南朝) 양나라(梁) 시절의 역사서 『남사(南史)』에 기록된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양나라는 502년부터 557년까지 이어진 왕조로, 학문과 문화가 크게 발달했지만 정치적 혼란이 잦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문이 뛰어나고 성품이 성실하며 겸손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답니다. 그는 양나라 무제(武帝) 때 관군장군(冠軍將軍)으로 임명되어 나라를 지키며 충성스러운 삶을 살았고, 청렴함과 학식으로 이름났고, 은퇴 후에는 학문에 몰두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은 인물입니다.
여승진이 연주자사 (兗州刺史)에 부임했을때도 친척이나 형제들조차 관아에 들어 오지 못할 정도로 공정하게 일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이 모두 바깥 대청에 있어도 안에 들어와 앉지 못하게 했다.”
(兄弟皆在外堂, 並不得坐)
심지어 그의 재종 아우는 파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승진이 고을 원으로 부임하자 벼슬을 기대하며 장사를 접고 관직을 청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승진은 단호했습니다.
“각자 자기 신분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친척 덕으로 벼슬을 얻으려 하지 마라. 하던 일을 열심히 하라.”
(吾荷國重恩, 無以報效, 汝等自有常分, 豈可妄求叨越. 當速反蔥肆耳)
고향집 앞에는 독우(督郵; 역장)의 관아가 있었는데, 고을 사람들이 “관아를 옮기고 집을 넓히라”고 권했지만, 여승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 내 집을 넓히기 위해 관아를 옮긴단 말이오?”
(豈可徙官廨以益吾私宅乎)
이처럼 청렴하고 소탈한 그의 인품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편, 송계아(宋季雅)라는 관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정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로, 은퇴를 앞두고 집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송계아는 집을 보러 다니다가 여승진의 이웃집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모두가 “이 집 너무 비싸다”며 혀를 내둘렀죠. 그런데 송계아는 망설임 없이 그 집을 샀습니다.
하루는 여승진이 송계아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 僧珍問宅價 )
집값이 얼마 입니까?
송계아는 천백만금입니다.
僧珍問宅價 曰 一千一百萬 (승진문택가 왈 일천일백만)
여승진이 깜작 놀라며 다시 물었습니다.
어찌 그리 비싼값을 주고 사셨습니까? ( 怪其貴 )
그러자 송계아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季雅曰)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샀다 (一百萬買宅 千萬買鄰)"
怪其貴 季雅曰 一百萬買宅 千萬買鄰
괴기귀 계아왈 일백만매택 천만매린
집값보다 열배나 비싼 돈을 이웃을 위해 썻다는 송계아의 말은 좋은 이웃이 주는 가치를 돈으로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하게 여긴 그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값보다 이웃이 더 비싸다니, 요즘 같으면 커뮤니티에서 난리 났겠죠?
“집값은 백만금, 이웃 값은 천만금이지!”라며 좋은 이웃이 주는 가치가 그만큼 크다고 강조한 이이야기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옆집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엔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누군지 모르고 지내기 일쑤지만, 막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와줄 사람도 이웃입니다. 천만매린은 “좋은 이웃 하나면 열 보험 안 부럽다”는 걸 알려줍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닌 삼천지교(三遷之敎)처럼, 좋은 이웃과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니까요. 오늘, 복권 대신 좋은 이웃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이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송계아가 그렇게까지 해서 이웃으로 삼고자 했던 여승진은 단순히 옆집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였기에, 좋은 이웃의 존재는 개인의 인격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송계아의 선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당시에는 사회에서 이웃은 단순한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었기도하고, 누가 이웃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신분이 평가되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같이 대화를 나눈 여승진 같은 인물이 곁에 있다는 것에 대해 송계아는 단순한 인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학문적 자극을 주는 스승이자,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사람,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신뢰를 주는 존재로 여기며, 그 이웃의 영향을 받으며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교육 환경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삼천지교(三遷之敎)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이웃과 함께 자라는지가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잘 보여주죠.
송계아의 일화는 단순히 ‘좋은 사람 옆에 살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라, 인생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대적 가치를 반영합니다.
오늘날 ‘이웃’의 개념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몇 년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큰 위기나 긴급한 순간에 가장 먼저 도와줄 사람은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일 때가 많습니다.
중국 속담인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는 ‘먼 곳의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는 뜻으로, 바로 이런 상황을 설명합니다.
천만매린은 이런 현실 속에서 교육, 치안, 생활 편의성 등을 이유로 더 좋은 이웃과 환경을 찾기 위해 이사를 선택하는 현대인들의 모습들을 볼때 송계아의 선택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웃은 단순한 공간을 함께 나누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돈 주고 이웃을 사겠다는 말이 너무 과장한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값보다 비싼 이웃을 선택한 송계아의 결정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좋은 교육, 치안, 생활 편의성 등으로 이사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송계아의 선택과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이웃은 생활의 질을 높여주고,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주며,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제공하는 이러한 이웃은 고, 단순히 옆집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으며,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송계아는 단순히 집을 산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이 주는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투자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거죠.
집값이 아무리 비싸도, 옆집 사람이 늘 소란을 피우고 불편하게 한다면 그 집은 결코 ‘행복한 집’이 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좋은 이웃이 있다면 일상의 행복은 물론이고, 위기의 순간에 기댈 수 있는 든든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관계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좋은 이웃이 주는 안정과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과 재산이 있어도, 가까이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 행복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천만매린은 “좋은 이웃은 열 보험 안 부럽다”는 말처럼, 경제적 가치와 재산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 이웃 간의 신뢰와 유대가 주는 따뜻함을 되새기게 하는 말입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점점 단절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웃 간의 따뜻한 유대는 더욱 값진 자산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게 된다면 오늘 당신이 사는 곳에서 먼저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보세요.
오늘, 바로 지금! 당신이 사는 곳에서 좋은 이웃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 따뜻한 마음이 그 작은 인사가 언젠가 천만금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순간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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