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 9장 1절 – 조상을 기억하는 사회는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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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기억하는 자는, 삶의 뿌리를 안다”

 

현대 사회는 과거와 단절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상’이나 ‘전통’이라는 단어는 점점 박물관 속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속도와 효율이 중시되는 시대 속에서,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리는 행위는 종종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이러한 흐름에 정면으로 반하는 통찰을 남깁니다.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죽음을 신중히 예를 다해 마무리하고, 돌아가신 조상을 진심으로 추모하면, 백성의 도덕은 두터워질 것이다.’”

 

이 짧은 구절은 장례나 제사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도덕성과 공공 윤리가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고찰이자, 기억이라는 윤리적 실천이 공동체에 미치는 근본적 영향을 드러내는 사상적 선언입니다.

 

조상을 기억할 때, 덕은 깊어진다 – 한자 해석과 철학적 의미

「愼終追遠 民德歸厚矣」의 문자적 해석

  • 愼(신): 삼가다, 신중하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예와 절차에 따라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대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 終(종): 끝, 죽음. 여기서는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 또는 타인의 삶이 끝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 追(추): 쫓다, 따르다. 시간적으로 멀어진 존재를 회상하거나 기리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 遠(원): 먼 조상, 오랜 옛날 사람. 공간적 거리보다 시간적 거리를 강조합니다.
  • 民(민): 백성, 일반 사람들.
  • 德(덕): 도덕, 인품, 인륜. 인간이 갖춰야 할 내면의 질서와 품성을 의미합니다.
  • 歸(귀): 돌아가다. 어떤 상태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행위적 변화를 나타냅니다.
  • 厚(후): 두텁다, 깊고 진실되다. ‘민덕’이 ‘귀후’한다는 말은, 백성의 도덕성이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성숙해진다는 뜻입니다.

종합하면,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죽음을 예로써 신중하게 마무리하고, 조상을 진심으로 기리면, 백성의 도덕성은 자연스럽게 깊고 두터워진다.”

 

유가(儒家) 철학에서 '죽음'과 '예(禮)'의 관계

유가 사상은 인간의 도덕성과 사회 질서가 ‘예(禮)’라는 제도와 실천을 통해 형성된다고 봅니다. 그 중에서도 ‘종례(終禮, 장례)’와 ‘사조(祀祖, 제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닌 도덕적 훈련의 공간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주 “예(禮) 없이는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감정의 방향성과 사회적 질서를 구현하는 상징 체계입니다.


특히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예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 존재의 경계이자, 사회적 책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 신종(愼終)은 ‘장례 절차를 잘 지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신중하게 맞이하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존엄한 인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삶의 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며, 단순한 감정적 애도가 아닌, 의례를 통해 슬픔을 도덕적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한 생애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남은 자들이 삶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행위입니다.
  • 추원(追遠)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 뿐만이 아닌 오래된 조상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실천입니다. 그 과거로부터 현재의 삶의 방식과 도덕 기준을 정립하는 문화적 복원 행위로서, 조상은 단지 혈연적 존재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질서를 전해준 문화적 뿌리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유가가 말하는 ‘德’이란 단순히 외적인 윤리 교훈이 아니라, 삶 전체의 리듬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기고 실천하는 태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해, 공자는 『논어』에서 인간은 반드시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증자는 이를 계승하여 기억이 곧 덕(德)의 토대가 된다고 말합니다.

 

🧠 기억의 윤리학 – 공동체 도덕의 뿌리를 묻다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이 구절은 사회 전체의 도덕적 성숙이 기억과 예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고전적 명제를 담고 있습니다.  ‘효’에 대한 권고로만 볼 것이 아닌데, 그 이유는  기억의 정치학(politics of memory)이라는 현대적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어떤 사회가 누구를 기억하고, 어떻게 기리는가는 그 사회의 가치체계와 미래 방향성을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죠. 

 

어떤 사회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고, 어떤 의식을 통해 그 기억을 유지하며, 후손에게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는 → 그 사회의 정체성과 도덕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시간을 관통하는 윤리적 연대입니다.
  • 신중한 장례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의례적 기획입니다.
  • 덕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천천히 쌓이는 감정적이고 문화적인 자산입니다.

증자는 ‘조상을 잘 기리면 덕이 저절로 생긴다’는 인과적 명제가 아닌, 도덕적 조건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억을 잃은 사회는 도덕도 잃는다”는 경고를 남깁니다. 그리고 덕은 노력으로만 생기지 않으며, 무엇을 존중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뜻임을,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는, 바로 도덕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알려줍니다.

 

🌱 오늘날의 적용 – ‘신종추원’은 살아있는 사람의 과제다

‘愼終追遠’은 결국 공동체적 덕성의 기초 작업으로, 이 구절은 제사나 조문 같은 ‘과거의 유교적 행위’로만 이해될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면, 삶도 가벼워지고, 타인의 생명 또한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반대로 죽음을 존중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자도 존중하게 됩니다. 

  • 가족사(家族史)에 대한 관심: 나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은 곧 나의 정체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일입니다.
  • 추모 문화의 재해석: 장례식, 기일 추모, 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문화는 여전히 사회적 연대의 장입니다.
  • 죽음을 통한 삶의 성찰: ‘죽음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결국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 질문입니다.

공자는 ‘효’와 ‘예’를 단지 가족 윤리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를 국가 운영의 기반이자, 사회 전체의 도덕적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증자의 말은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한 사회 전체의 품격을 결정짓는다’는, 유가 철학의 핵심이 응축된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기억하는 방식은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조상을 기억하는 일은 단지 과거에 대한 예의인가, 아니면 현재를 위한 윤리인가?”

 

🌸 조상을 기억하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다

“죽음을 신중히 대하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도덕은 깊어진다.”

 

기억을 통해 도덕이 살아난다는 명제로, 우리는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가 있었고, 그 부모에게도 조상이 있었으며, 그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기억의 총합’으로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상을 기억하는 행위는 과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하고, 미래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힘이 됩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품격도 사라집니다. 

한 사회의 윤리와 도덕은 단지 법이나 교육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무엇을 중히 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는, 삶도 가볍게 여기게 되고, 조상을 잊는 공동체는, 미래를 설계할 뿌리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장례를 무시하는 문화는, 인간의 존엄을 저버리는 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삶의 끝, 죽음의 순간을 신중히 대하라. 그리고 조상의 기억을 소중히 여겨라. 

 

 

💭 오늘 하루,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고마웠던 사람, 돌아가신 누군가, 내 삶에 뿌리가 되었던 기억을 조용히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 당신의 삶도 조금 더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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