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대한민국의 작은 지역 우리 동네는 다양한 역사와 전통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글에서는 우리 동네의 역사적 배경 주요 특징을 살펴보며 이곳이 왜 특별한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며 현재의 매력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중화동 ( 中和洞 ) 동이름의 유래
중랑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중화동은 중랑천을 건너 동대문구이문동, 휘경동, 동쪽으로 상봉동, 남쪽은 면목동, 북쪽은 묵동과 접해 있습니다.
중화동의 동 이름은 봉화산 아래 예전부터 위치한 자연 마을인 '가운데 마을'중리(中里)와 '아랫마을'하리(下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중하리(中下里)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중리는 마을이 상리와 하리 중간에 위치한다고 해서, 또 하리는 마을이 아래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양주군 구리면 중하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당시, 동민들의 의견에 따라 ‘아래 하(下)’ 대신 '화목할 화(和)'를 넣어 중화동(中和洞)으로 개칭되었습니다.
당시 지역주민들이 아래(下)를 나타내는 글자 대신 화합(和)을 뜻하는 글자를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1988년에 중랑구가 신설되면서 중랑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동북쪽에 봉화산이 있으며, 도시계획에 의해 가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도시화되기 이전에는 중랑천변의 배추와 미나리 산지였고, 동부간선도로 · 동일로와 더불어 지하철 7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한 지역입니다. 중랑구의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로 1904년에 설립된 경동제일교회가 있으며, 서촌(徐村) · 최촌(崔村) 등으로 불리는 집성촌이 남아있습니다.
중동 소재 문화유적
경동제일교회
소재지 : 중랑구 봉화산로 91(중화동92-1)
건립시기 : 1904년
담임목사 : 안재
경동제일교회는 ‘서울의 동쪽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동제일교회는 1904년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하리(현재의 중랑구 중화동 145-1번지) 최승렬의 집 사랑방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시초가 되었으며, 최승렬과 미국 선교사 한운설(G.G. Hounshell)이 함께 설립하였다.
1909년 미국 북장로 선교사 곽안련(C.A. Clark)이 당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감리교에서 장로회로 바뀌게 되고 1942년 경동제일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박용환 육영 기념비 및 동창학교
소재지 : 중랑구 봉화산로 91(중화동 92-1)
건립시기 : 1939년, 일제 강점
‘동창심상소학교’는 1935년 개교 후 1946년까지 11년간 유지된 일제강점기 초등교육기관으로, 월사금이 비싸 대다수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학생들이 학교를 멀리 다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박용환 씨가 1935년 현재 경동제일교회 자리에 설립한 사립학교입니다. 1939년 3월 그 공로를 인정하여 당시 양주군에서 ‘신재 박용환 육영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46년까지 11년간 유지된 일제 강점기 초등 교육기관이었지만, 1946년 동창학교가 국가에 헌납되고 148년 동창학원이 폐교된 뒤에도 1949년부터 1954년 봄까지 공립 중화초등학교의 분교로 사용되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였던 1951년부터 3년간은 중화초등학교가 폭격으로 전소되어 중화초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의 교실로 사용되었습니다. 1953년 이후 ‘경동제일교회’가 동창학교 터를 매입하여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현재는 경동제일교회 한쪽에 기념비만이 잔존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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