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불명조(風不鳴條) - 태평성대의 조화로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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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풍불명조(風不鳴條)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쓰이고 있지는 않는 듯합니다. 이 고사성어 풍불명조(風不鳴條)는 "바람이 가지가 울리지 않게 불다"는 의미로, 기후가 순조롭고 천하가 태평함을 상징합니다. 마치 바람이 세지 않아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고, 조화롭고 안정된 시대를 나타내며, 인간의 욕망을 넘어선 자연의 균형과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풍불명조

 

 풍불명조(風不鳴條) 

 

옛날 사람들에게 농사는 하늘의 변화에 크게 의지하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바람과 비는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였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거나,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농작물에 피해를 입혀 흉년을 피할 수 없었고, 반대로, 비가 적절하게 내리고 바람이 순하게 불면 농작물이 잘 자라 풍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후 조건을 '우순풍조(雨順風調)'라고 합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은 성군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임금과 탕왕과 같은 성군의 시기에도 구년홍수와 칠년대한 같은 재난이 있었습니다.

 

九年洪水 七年大旱 非堯與湯 民死過半
구년홍수 칠년대한 비요여탕 민사과반
구년이나 이어진 홍수 칠 년이나 계속된 가뭄
요임금과 탕왕이 아니었다면 백성 절반 이상의 죽었으리
소옹(邵雍/北宋), <수한음(水旱吟)> 

탕왕의 칠년대한과 기우제
옛날 옛날, 탕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7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혹독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땅은 갈라지고, 강물은 말라붙었으며,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허덕였습니다.
탕왕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하늘에 기도를 드리고, 스스로를 낮추어 몸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기우제를 올렸습니다. 탕왕은 상림이라는 신성한 숲에서 직접 제사를 지내며 하늘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늘이시여,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부디 비를 내려주시어 백성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탕왕의 진심이 하늘에 닿았는지, 기우제를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탕왕에게 감사했습니다.

 

요임금의 구년홍수와 우왕의 치수
또 다른 시대에는 요임금이 다스리던 시대에 9년 동안 끊임없이 비가 내려 큰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강물이 범람하여 집들은 물에 잠기고, 농작물은 쓸려 내려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집을 잃었습니다.
요임금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좀처럼 홍수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임금은 지혜로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홍수를 막을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지만,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요임금은 하늘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신이시여,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홍수를 멈춰 주십시오."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었는지, 어느 날 한 노인이 요임금 앞에 나타나 홍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며 한 청년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바로 우왕이었습니다.
요임금은 우왕을 찾아가 홍수를 막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왕은 흔쾌히 요임금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우왕은 강을 따라다니며 물길을 바꾸고, 높은 둑을 쌓았습니다. 또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우왕의 지혜와 노력 덕분에 홍수는 점점 잦아들었고, 마침내 땅이 드러났습니다. 백성들은 우왕에게 감사하며 환호했고, 요임금은 우왕을 총리로 삼아 백성들을 잘 다스렸습니다.
요 임금과 탕왕의 시기와 같은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에도 자연재해는 피할 수가 없었는데, 이럴 때 지도자의 태도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조선 태종은 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기우제를 지냈고, 태종이 죽은 뒤에 비가 내렸다는 '태종우'의 고사도 있습니다.

태종우(太宗雨) 이야기
조선의 태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년에 그는 심각한 병을 앓으며, 나라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하늘은 굳게 닫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고, 땅은 갈라지고 메말라 갔습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농사는 망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습니다.
태종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기우제를 올리고, 절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구휼을 베풀었지만 가뭄은 좀처럼 해갈되지 않았습니다. 태종은 이러한 상황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날씨가 이렇게 가물어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내가 직접 하늘에 올라가 비를 간청해야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간절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가뭄은 계속되었고, 결국 태종은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놀랍게도 태종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날,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그동안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하늘이 태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듯했습니다. 이후로 매년 같은 날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이를 '태종우'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자연의 순리와 조화로움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태평성대와 풍불명조

고사성어 풍불명조(風不鳴條)는 후한 시대의 사상가 왕충이 쓴 '논형(論衡)'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왕충은 이 책에서 자연의 조화로움을 설명하며, 당시의 지배적인 경학을 비판하고 다양한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논형'의 시응편에서는 "바람은 나뭇가지를 울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비는 흙덩이를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내렸으며"라고 언급하며, 자연의 조화로운 상태를 묘사했습니다.

 

비슷한 내용은 전한의 학자 환관이 쓴 '염철론(鹽鐵論)'에도 등장합니다. 이 책은 조정에서 각종 정책을 토론하는 내용을 엮은 독특한 형식의 책으로, '수한편'에서는 주공이 자신의 품행을 닦아 천하가 태평하고 큰 흉년이 든 해도 없었다며, "비가 내려도 흙덩이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가볍게 내렸고, 바람도 나뭇가지가 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백성을 위하고 순리대로 다스리면 태평성대가 이어진다는 미담입니다.

 

 기후변화와 풍불명조

현재 기후 변화에 따른 각종 기후 이변 현상으로 기후위기, 기후 비상사태라도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온실가스가 원인이 돼서 나타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은 지구 전체 평균 온도를 높이고, 사막의 확대와 폭염, 산불 등을 점점 늘려가고 있습니다. 또한 빙하가 사라지고, 자연재해를 가져오면서 인류에게 큰 도전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성인의 정치로도 어쩌지 못하는 기후는 과학의 힘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훼손을 막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지속 가능한 방법을 통해 순조로운 기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전 세계 인류가 함께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평화는 인간의 평화를 반영한다." 

 

어찌 보면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이 어려움을 초래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자연이 먼저 우리에게 경고를 하는 단계를 넘어서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배제되는 상황으로 치닫을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공존, 공생의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끼리의 공존, 공생이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공존 공생의 삶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 함께 공부한  풍불명조(風不鳴條)는 바람이 세지 않아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고, 조화롭고 안정된 시대를, 인간의 욕망을 넘어선 자연의 균형과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를 상징합니다. 여기에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포함되고,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와 행동이 함께해야 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꿈꾸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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