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 11 - 자왈 부재에 관기지하고 부몰에 관기행이나 삼년을 무개어부지도라야 가위효의니라.(子曰 父在에 觀其志하고 父沒에 觀其行이나 三年을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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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父在에 觀其志하고 父沒에 觀其行이나 三年을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자왈 부재에 관기지하고 부몰에 관기행이나 삼년을 무개어부지도라야  가위효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적을 살필 것이니, 삼 년 동안 아버지가 지키던 것을 고치지 않아야 효자라고 이를 만하다.

 

 

공자의 가르침을 볼 수 있는 논어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지침과 영감을 주는 고전입니다. 그중에서도 학이편은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으로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닌 배움이라는 자세와 즐거움, 도리, 실천 그리고 노력에 대해서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학이편 11절은 공자의 효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삼년상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개인의 도덕적 성숙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제도중의 하나였습니다. 공자는 삼년상이라는 의례를 비유하며, 부모의 삶을 기리고 그뜻을 이어가는 것이 효의 근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교적 효 사상과 삼년상

 

유교에서 효는 인간관계의 기본 윤리로, 특히 부모에 대한 효는 모든 덕목의 근본으로 여겨졌습니다. 삼년상은 이러한 효 사상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유학이 주심이었던 시기를 중심으로 삼년 동안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르침을 따르는 일은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높이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은 어느 시기에서나 있어왔습니다. 

 

삼년상 제도는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에 대해 은나라 때의 시속이라는 설과 주나라 때 시행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분명한 것은 공자 이전부터 삼년상이 있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속과 불교가 습합된 무불식(巫佛式) 상장례를 시행하다가 고려말 이후 『주자가례』가 들어오면서 『주자가례』에 따라 사례(四禮)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백일상이 일반적이었으며, 『주자가례』에 따른 삼 년 상제는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고, 장례도 화장을 하거나 사찰 내에 빈소를 마련하여 추천재를 올리거나, 초상이 나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행했으며, 왕실에서도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해서 치르는 역월 단상제를 행했습니다.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점차 무불식 상장 요소가 배제되고 유교식 상장례로 전환되어 유교식 상장을 법제화하였지만 불교식으로 상을 치르는 자가 사대부 10명 가운데 6, 7명이고, 유교식으로 상장을 치르는 자는 겨우 3, 4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주자가례』에 따른 유교식 상례는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고 15세기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착되었습니다.

또한 삼년상 제도가 중국에서처럼 모든 백성에게 다 적용된 것은 아니어서 신분에 따라 시행을 달리했는데, 시행 초기 삼년상은 귀천이 없이 실시해야 한다는 당위론과 허락하면 군역(軍役) 체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현실론이 팽팽히 맞서 결국 사대부에게는 삼년상 시행을 강제한 반면, 서인과 군사들은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군인이나 서인들에게 삼년상을 허용하면 상복만 입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음식을 먹는 등 삼년상은 군역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중종 때부터 점차 확대되어 삼년상은 마침내 양반이나 상민의 구별 없이 누구나 행하는 상례가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와 달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개인주의가 강조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삼년상은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사십구재나 100일 탈상을 하고, 일 년 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심지어는 부모의 시신을 매장한 다음날 3일 탈상을 하는 경우도 흔하고,  아예 탈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도 허다합니다. 물론, 성인이 만 2년이라는 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부모의 묘를 돌보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삼년상에 대한 의미는 다양한 해석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삼년상이 지닌 가족 간의 유대감 강화, 도덕적 성숙, 사회적 통합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삼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기간을 부모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바쁜 일상 속에서 소홀해진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삼년상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다양한 의미와 목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째,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들의 덕을 기리는 시간으로,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둘째, 삼년상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도덕적 성숙을 이룰 수 있었던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공자가 생각하는 삼년상을 행하는 이유

 

공자는 논어 양화 편 21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安."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故, 不爲也. 今女安則爲之."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 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재아문  "삼년지상, 기이구의. 군자삼년불위례, 례필괴, 삼년불위락, 락필붕, 구곡기몰, 신곡기승, 찬수개화, 기가이의."

자왈  "식부도, 의부금, 어녀안호?" 왈 "안." "녀안칙위지. 부군자지거상, 식지불감, 문악불락, 거처불안고, 불위야. 금녀안즉위지."

재아출, 자왈 "여지불인야. 자생삼년연후. 면어부모지회. 부삼년지상, 천하지통상야. 여야,

유삼년지애어기부모호?"

 

재아가 묻기를, “삼 년의 상은 기간이 너무 오랜 것 같습니다 군자가 삼 년을 예를 하지 아니하면 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니 군자가 삼 년을 악을 하지 아니하면 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니 옛 곡식이 이미 다하고 새 곡식이 이미 오르고 수나무를 마찰시켜 불씨를 고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 편안한가  고 하니 말하기를, “편안합니다.”라고 하셨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네가 편안하면 하라. 군자는 상 기간에 거할 때,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아니하며 풍류를 들어도 즐겁지 아니하며 거처함에 편안치 아니하니 그러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네가 편안하다니 그렇게 하여라.”라고 하셨다.

 

재아가 나아가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재아의 어질지 못함이여 자식은 낳은 지 삼 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삼 년의 상은 천하에 통하는 상인데 재아가 삼 년 동안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는가.”라고 하셨다.

 

재아와 공자는 삼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데, 재아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함을 더 강조하고, 사회변화에 따라 의례도 바뀌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인간의 본성은 효라고 믿고 태어나 부모에게서 3년 동안 사랑을 받고 자랐음을 강조하고 3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예를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고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효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공자는 효를 절대적 가치로 보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재아는 효를 상황에 맞게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자는 시간을 절대적 가치로 강조하였지만 재아는 시간의 상대적 가치를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라는 관점에서 확대해 보면 공자는 개인이 사회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재아는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분 공자 재아
절대적 가치 상황에 맞는 해석
시간 절대적 상대적
개인과 사회 사회 우선 개인의 삶도 중요

 

개인의 행복은 삶의 근본적인 목표이며, 동시에 사회적 책임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입니다. 이 두 가지 가치는 상충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데, 개인의 행복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사회의 발전은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때문에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부모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영원히 지탱해 주는 튼튼한 버팀목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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