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덕지적야 鄕原德之賊也 위선과 진실의 갈등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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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은 덕을 해치는 사람이다.

논어 양화 13편에 등장하는 "향원덕지적야(鄕原德之賊也)"라는 구절은 사람의 위선에 대해 공자의 날카로운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향원'이란 겉으로는 덕을 행하는 듯 보이면서도 속마음은 사리와 이익에만 급급한 위선자를 일컫는다. 공자는 이러한 향원을 덕을 해치는 사람 즉 덕의 도적이라고 말하며, 진정한 덕목과는 거리가 먼 존재임을 명백히 했다.

하지만 단순히 향원덕지적야(鄕原德之賊也)라는 구절 만으로는 그 내용을 상세히 알기 어려운데, 그 이유를 맹자는 책 ' 진심하(盡心下)에서 자세히 밝혀준다.

 

제자 만장이 " 왜 공자가 진나라에 있을때 노나라의 뜻이 큰 선비를 그리워했는지"를 묻자 맹자는 이렇게 공자의 생각을 말해준다. 

"공자께서는 '중도를 실천할 수있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뜻이 큰사람(광자, 狂者)이나 주저하는 사람 (狷者)와 함께할 것이다. 뜻이 큰사람은 진취적이고, 주저하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것을 반드시 지킨다'라고 하셨다. 공자께서 중도를 행하는 사람을 어찌 얻고자 하지 않았겠느냐? 반드시 얻는다고 할 수 없기에 그다음차원의 사람을 생각한 것이다"

 

중용의 덕목: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균형

공자는 삶의 모든 면에서 '중용(中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용이란 어떤 면에서도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고 적절한 도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삼가고, 상황에 맞는 유연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향원은 이러한 중용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겉모습만으로 덕을 행하는 척하며 진정한 덕목을 저해하는 존재로 비판받는다.

중용의 사람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겪다 보면, 공자가 이야기 하는 군자의 모습을 현시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온화함과 위엄 그리고 공손함은 사람이 취해야 할 좋은 덕목이지만 이 세 가지를 갖추고 있는 리더나 어른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중용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부족하지도 않아야 하고 지나쳐서도 안된다. 

온화한 사람이 지나치면 줏대가 없게 느껴지거나, 다른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이 된다. 그리고 너무 위엄을 강조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거나,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공손함도 마찬가지다 예의를 차리고, 존중하는 모습은 중요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되면 비굴하게 느껴지거나 경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에서 보면 온화하며, 그의 말은 엄정하다 - 자하

 

자하
자하- 사기열전

 

공자가 강조하던 군자의 모습이고, 오늘날 필요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찾아보기 힘들다. 

 

올바름과 그릇됨의 구분: 명확한 판단과 비판적 사고

덕을 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진정한 덕목을 행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향원덕지적야(鄕原德之賊也) 에서의 향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사회적 관습에 아첨하며, 진실보다는 거짓을 택하는 사람이다. 이는 명확한 판단과 비판적 사고의 부족을 드러내며, 덕목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덕을 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내면의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에 기반해야 하고, 실천을 통해 증명되는 가치관이다.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말은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해야만 한다. 말을 아무리 잘해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이 된다.

선행기언 이후종기先行其言 而後從之
말보다 먼저 실행하고, 그 다음에 말이 행동을 따른다.
고자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게 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 공자 논어 위정편

최근 들어 수많은 정치인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발언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고, 잘못된 것을 찾을 수 없어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가식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올바른 모습으로, 정도의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속 마음은 현실에 타협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공자는 이러한 사람을 사이비라고 한다. 

겉과 속의 진실을 파악하는 통찰력: 위선을 꿰뚫어 보는 눈

향원덕지적야(鄕原德之賊也)에서의 향원은 겉으로는 훌륭한 행동을 보이면서도 속마음은 사리와 이익에만 급급한 위선적인 존재이다. 

오사이비자(惡似而非者) - 맹자 진심편 

 

진정한 덕목을 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선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필요하다. 명확한 판단과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공자는 가짜이면서 진짜인 척하는 사이비를 가장 싫어했다. 

오해가 될 단어 중에 이단(異端)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이단은 사이비와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단은 보편적 이론에서 벗어난 (다르게 해석하는) 교리, 주장, 등을 말한다. 

때로 우린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진짜인척 하는 것과 다른 주장은 다르다. 

 

중용, 올바른 판단, 진실성을 통한 덕의 실천

향원에 대한 공자의 비판은 진정한 덕목을 실천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를 일깨워준다. 공자가 이야기하는 향원의 그림자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진정한 덕을 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오늘,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편견이나 아집에 빠지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편견과 아집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돌아보고, 발전하기를 꾀해야 한다. 진정한 덕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향원덕지적야(鄕原德之賊也)는 단순한 비판이 아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훈을 제공한다.

우리는 삶의 모든 면에서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중용의 원리를 지키고, 명확한 판단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옳고 그름을 구분하며, 겉과 속의 진실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향원의 그림자를 벗어나 진정한 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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